공정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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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크게 유행한 적 있다. 나도 당시에 이 책을 조금 읽었었는데, 조금 읽었음에도 ‘마이클 샌델’이라는 이름을 기억에 새기기 충분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것 같다. 무슨 책을 읽을까 찾아보던 중, 이 책, <공정하다는 착각>을 발견했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내용이 요즘 내가 간간이 궁리하는 내용과 유사해 보였고, 마침 저자도 마이클 샌델이니 믿고 읽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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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 제목처럼 공정함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착각 뒤에 있는 능력주의를 다루고 있다. 대입을 예로 들면, 우리는 노력한 사람이 대입 관문을 통과하고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공정한 조건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승리를 쟁취했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챙기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책은 이 당연함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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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일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대체로 옳다고 여겨진다. 사람을 채용할 때 후보자의 능력은 효율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중요하다. 일하는 사람이 유능하다면 고용주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종교나 인종, 성별 때문에 유능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차별이고 불공정이다. 능력에 따른 채용이 선하고 분별 있다고 하면, 능력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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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어두운 면은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말에 숨어 있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책임에 큰 무게를 싣는다. 개인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만, 우리 각자가 삶에서 주어진 결과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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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능력주의의 폐단은 능력뿐 아니라, 건강, 도덕, 종교, 심지어 역사조차 영향을 끼쳐 능력주의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병이 든다면 그것은 단지 불운이 아닌 채소와 저지방 위주의 식단이 질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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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에서는 승리자가 ‘나는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에 섰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입시와 같은 결실이 헌신과 노력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이 스스로 해내도록 도와준 부모와 교사의 노력이 있다. 타고난 재능과 자질도 있다. 우연히 얻은 재능이 가치를 갖는 사회에 태어난 행운도 있다. 능력주의는 승리자가 이런 사실을 외면하게 만들고 능력주의적 오만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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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적 오만과 그 폐단이 불러온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공공선(Public good)을 기술관료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도덕적 논쟁에 대한 공적 담론을 실종시켰다. 다른 하나는 능력주의적 오만이 노동자들이 하는 일의 존엄성을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시장에서 별 가치가 없고, 공공선에도 기여하지 않으며, 사회적 인정이나 명망도 따라붙지 않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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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무서운 점은 공공선에 대한 기술관료적 시선을 당연시 여기게 한다는 점과, 노동자들 스스로도 본인이 하는 일을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스스로의 책임으로 여기게 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점점 더 고도화되는 경쟁은 그 과정에서 승리자들조차 상처 입힌다. 그렇기에 경쟁의 승리자들은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이를 쟁취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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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능력주의적 오만으로부터 포퓰리즘의 반격이 촉발되었고 민주사회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많은 예시와 인용을 통해 반복적으로 능력주의의 문제를 진단한다. 마지막에는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해결책의 핵심은 일의 존엄성 회복과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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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평소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다. 다만 나는 겸손에 더해 상호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다면 겸손해지고 일의 존엄성 또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교육의 목적은 지식의 함양을 넘어 관계의 함양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해와 배려를 통한 상호존중은 건전한 의사소통을 이룩할 것이고 겸손과 함께 일의 존엄성 및 공적 담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사랑이 넘치는 사회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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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내 유명 대학교 중 하나에 다니고 있지만 내 실력으로 합격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래서 책을 처음 읽을 때 책에서 말하고 있는 능력주의적 오만으로부터 나는 많이 벗어나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나도 능력주의적 사고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처절히 깨달았다. 그와중에 아이러니한 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운만 믿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노력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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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왜 성공한 사람들이 보다 덜 성공한 사회구성원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설령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 "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