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Year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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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도 끝났으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당시에는 몰랐으나 사진을 보면서 하나하나 돌이켜보니 21년을 아우르는 하나의 키워드가 떠오른다. 바로 '자립'이다. 20살부터 집에서 나와 10년간 타지에서 생활을 했는데, 30대의 시작에서 자립을 논한다는 게 한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30세를 '이립'이라 부르기도 하니, 내가 생각하는 자립이 이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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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겠으나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다. 이름하여 자존감(自存感)이다. 무언가의 존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기서 다루는 '무언가'는 스스로이니 '나'에 대한 인식을 뜻한다. 즉, 나의 2021년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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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작은 의문이었다. 연초에 연구실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내가 좋은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는데, 문득 내가 좋아하는 다른 건 또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막상 고민을 하고 보니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참 사소하지만 중요하고 심지어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애써 외면해온 걸 그제야 마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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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이런 사람이다'라고 규정하는 걸 꺼려 한다. 한 번 규정하면 그렇게 살아야 할 것만 같다는 막연한 거부감이 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아니었다. 나를 인식한다는 건 삶의 방향 확인하는 일이었다.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걷고 있는 길, 내가 걷고 싶은 길,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땅만 보고 걷다가 앞을 보고 주변도 둘러보면서 걷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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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은 내가 참 다방면으로 부족한 사람이고,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들 많다는 것이다. 당장에 매일같이 욕하면서도 성실히 출근하는 친구들과 공부하는 친구들이 그렇고, 이런 친구들을 어르고 달래서 키워온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다.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가는 대부분이 이런 훌륭한 사람들이라니! 좋든 싫든 주어진 인생을 성실히 살아가고, 주어진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존경받을 만한 것 같다. 절대 내가 일하기 싫고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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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 타인을 통해 다시 나를 바라보고. 무한 반복.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습성이 있으니,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곧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자립이란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상당히 모순적이다. 반대로 타인과의 건전한 관계는 자립으로부터 오니 이 둘은 상호 보완적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의 자립을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인식해야 한다. 양자역학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관측에 의해 상태가 결정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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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부끄럽고, 두서없고, 모호하고, 정제되지 않은 내용들을 떠들었는데,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2021년은 나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해였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는 거다. 21년도 6월이 끝나갈 무렵 썼던 글이 있다. 행복한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기대만큼 행복한 하반기는 아니었다. 후회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쉬움이 좀 있다. 그래도 의미 있는 하반기였다. 미루고 까먹고 잊던 숙제를 해결한 느낌이랄까. 요약하면 개운한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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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