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I S T O R Y

expectation

oghim 2022. 10. 1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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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있어서 나에게는 두 가지 지침이 있다. 그중 하나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말 하면 안 좋게 보는 이들이 더러 있다. '기대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상대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관심이 없다'와 '기대하지 않는다'는 전혀 다르다. 상대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게, 곧 관심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내 의도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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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은 '내가 원하는 상대의 모습'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나 행동을 했으면 하고 '기대'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기대감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행위는 상대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꽤나 이기적인 행동이라 볼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과격하게 표현했지만 중요한 점은, 누군가에 대한 기대감의 표출이 그 대상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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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의 무서운 점은 이를 '사랑' 혹은 '우정', 좀 더 모호하게는 '우리 사이'라는 관계를 들먹이곤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관계에 기반한 부탁은 듣는 이로 하여금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은 인식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는 그 관계가 가까울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자신의 꿈을 자식이 대신 이루어주길 기대하고 강요하는 부모님들이 '네가 잘 되길 바라서 그래' 라거나 '너를 생각해서 그래' 따위의 말로 포장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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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는 일종의 욕심이다. 상대가 자신의 기대대로 행하길 바라는 욕심은 '너를 생각해서'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포장되어 상대에게 전달된다. 상대방이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실망을, 부응한다면 만족을 느낄 것이다. 결국 기대의 결말은 만족 혹은 실망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기쁨 혹은 행복에 다다를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만약 만족을 하더라도 기대감은 다른 형태를 갖춰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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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의 또 다른 단점으로는 기대치가 높을수록 결과에 대한 평가는 박해진다는 점이다. 객관적으로 좋을 수 있는 것도 기대했던 결과에 미치지 못한다면 만족스럽지 못하고 결국 실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껏 기대하고 갔던 음식점이 막상 가보니 별로이거나, 반대로 기대를 안 했던 영화를 재밌게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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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점은 서로가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해도, 우리가 아무리 타인과의 관계없이 살아갈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 독립적인 관계임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켜 줄 의무가 없다.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기대하고 요구할 권한도 없다. 그러니 상대에 대한 어떠한 기대감도 내려놓아야 한다. 이를 놓아줄 수 있게 된다면 상대에게 실망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상대를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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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이렇다. 사실 타인에 대한 기대감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대와 결과를 비교하고, 이 비교가 실망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이니, 기대는 하되 비교 혹은 실망을 안 하면 되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나도 당연히 그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게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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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많이 길어졌는데,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부분은 여기서 말하는 기대감은 그 대상이 '타인'일 때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대상이 타인이 아닌, 스스로 혹은 유/무형의 무언가라면 크게 해당사항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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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