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I S T O R Y

2023 Yearbook

oghim 2024. 1. 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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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되돌아보며 글을 쓸 때마다, 항상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반성이다. 반성하는 내용도 비슷하다. 더 열심히 살지 못한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렇다고 매년 반성문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생각해낸 방법이 그 해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찾는 것이다. 키워드를 찾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그 해 찍은 사진과 달력에 적힌 일정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면, 막상 여유 넘치는 한 해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의 나도 나름의 이유로 나름 바쁘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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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23년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재미'이다. 올 한 해는 유독 '재밌는 일 있냐?'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막연하게 상상되는 길고 지루한 회사 생활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통해 상대는 어디서 재미를 느끼는지, 무엇을 재밌다고 여기는지, 더 근본적으로 재미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 기억 속에서 재미있었던 사건들을 짜내다 보면, 나 역시도 어디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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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질문을 통해 알게 된 재미의 속성은 굉장히 단순했다. 다양한 변형들이 있겠으나, 근본은 결국 '새로운 것'이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정보, 새로운 사건 등등. 사람은 새로움으로부터 재미를 느낀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은 입력되는 모든 정보를 처리하지 않는다.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이전 장면과의 차이를 찾고, 코는 지속되는 향기에 적응함으로써 새로운 향기에 반응한다. 기존의 정보는 생존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 위험은 새로운 것으로부터 올 수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지 못한 생명체는 도태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새로운 정보가 더 높은 자극, 더 높은 가치로 입력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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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새로움을 추구하면 된다. 이를 위해 능동적인 방법과 수동적인 방법이 있겠다. 능동적인 방법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거나 새로운 환경에 놓이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면 된다. 반대로 수동적인 방법은 일상 속의 작은 변화를 발견하는 것이다. 아무리 일상이 쳇바퀴처럼 느껴져도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작은 변화를 발견하고 소소한 새로움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관찰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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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은 행복과 즐거움만을 동반하지 않는다. 슬픔과 괴로움을 갖는 새로움도 있다. 그러니 슬픔과 괴로움도 재미가 될 수 있다. 여행을 생각해 보자. 여행은 사람을 너그럽게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도, 안 좋은 일을 당해도 다 추억이라며 넘기기 십상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처럼 인생을 여행이라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에 보다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슬픔과 괴로움도 담담히 재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달콤함만이 맛이 아니라, 쓴맛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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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23년은 능동적 혹은 수동적으로, 자의 혹은 타의로 인해 몇몇의 큰 재미와 헤아릴 수 없는 소소한 재미로 점철된 한 해였다. 큰 재미들만 나열해 본다면, 수많은 여행, 다양한 문화생활, 해외 학회, 그리고 결혼 준비가 있겠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재미를 뽑자면 역시 결혼 준비가 아닐까 싶다. 이는 내 삶의 궤적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경치를 보여주었다. 함께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나누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사회적 통념에 따르는 등의 모든 과정이 사회와 동화되어 간다는 기분을 불러왔다. 이는 달콤하고 씁쓸한 맛이었다. 마치 재밌는 영화의 끝이 다가올 때의 아쉬움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듯한 복잡 미묘한 감정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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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씁쓸함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 혹은 사회 구성원이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 피터팬 증후군이라 할 수 있으며, 어린아이의 투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래도 성장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씁쓸한 맛에 대한 어색함이 있을지라도 거부감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재미로 여기며, 이 맛을 음미하고 다음에 올 행복이 얼마나 큰 달콤함으로 느껴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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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과 씁쓸함. 빛과 어둠. 행복과 불행. 이 모든 것들은 서로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이러한 조화인 듯하다. 이러한 대비는 우리에게 균형과 깊이를 제공하며, 삶을 더욱 풍성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내년에도 이 모든 것들에 재미를 느낄 수 있길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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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