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 I S T O R Y

2024 Yearbook

 

 

 

-

대게의 창작물들은 정형화된 플롯이 있기 마련이고,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타이슨의 핵펀치 같은 클리셰들도 다수 존재한다. 삶을 소설에 빗댈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네 삶 또한 정형화된 플롯과 핵펀치가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대표적으로 진학, 취직, 결혼, 출산 등이 그것이다. 나의 2024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고민하고 지나가야 할, 핵펀치 같은 대소사들이 꽤나 밀집되어 있던 한 해였다.

 

-

올해 초의 나는 2025년 2월에 졸업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될 것이라는 망상을 했더랬다. 심지어 이 망상에 맞춰 계획을 세우는 터무니없는 짓을 자행하고 마는데, 그 첫 번째는 이사였다. 8월에 결혼이 예정되어 있으니, 2~3월쯤 이사를 가서 계약이 끝나는 2025년 2~3월쯤 새로운 직장 주변으로 이사를 간다는 플랜이었다.

 

-

그리고 이사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출퇴근을 위한 자차 마련이었다. 대학원 생활 동안 최소한의 양심으로 저축한 돈으로 자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원픽은 경차이면서 넓은 레이였으나, 경차 반대파의 거센 저항과 거절하기엔 너무 거대한 협찬으로 결국 정반대 포지션인 렉스턴이 되어 버렸다.

 

-

8월에 예정된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틈틈이 그리고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양가 부모님의 환영 속에 상견례를 마치고, 아내의 수고와 배려 덕분에 웨딩 촬영, 드레스 선택, 한복 대여 등의 자잘하지만 지나칠 수 없는 통과의례도 무난하게 격파했다. 일찍부터 준비를 시작했기에 청첩장도 비교적 여유롭게 배포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결혼식 당일이 되었을 때에도 많은 분들의 축복 속에서 정신없지만 재밌게 마칠 수 있었다. 결혼식에 이어, 산 넘고 물 건너(진짜임) 도착한 몰디브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또 가고 싶다.

 

-

또 다른 핵펀치로는 졸업 준비가 있었다. 교수님의 제안으로 1월부터 연구실 동기와 함께 주간 회의를 시작했다. 여기서도 다사다난 했는데, 우선 빠르게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기존에 연구하던 CMG에서 궤도로 주제를 바꾸었다. 그리고 나름의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3월 즈음, 교수님께서 갑자기 연구 주제를 랑데부/도킹으로 바꾸자는 제안하셨다. 스스로의 연구 결과에 확신이 없었던 나는 권위에 굴복하여 주제를 다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추후에 이 주제가 다른 프로젝트를 위함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에는 좀 충격이었다.

 

-

완전히 새로운 주제였기에 조사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교수님께서 많은 아이디어를 주신 덕분에 꾸역꾸역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8월에는 교수님께 저널 논문 투고와 중간발표 일정에 대해 상담을 요청했다. 이 상담에서 교수님의 말씀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핵심은 졸업을 한 학기 미루자는 것이었다. 교수님의 당황한 모습과 횡설수설하던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나와 나의 동기는 얼얼해진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일단 원래 계획대로 강행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적절한 운과 동기의 큰 배려 덕분에 가장 중요했던 저널 논문이 10월에 게재 되면서, 11월에는 중간발표를, 12월에는 최종발표를 할 수 있었다.

 

-

마지막으로 12월에는 교수님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졸업 후 근처 정출연으로의 파견이 결정되었다. 취업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던 나에게는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거니와 큰 걱정을 덜 수 있었기에 반갑기도 했다. 후에, 내가 파견 가기로 한곳에 대한 수많은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러니까 지금은 조금 땀이 삐질 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파견이고 정식 채용은 아니므로 이런저런 고민은 계속해 봐야겠다.

 

-

2024년은 밀린 방학 숙제를 마무리하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를 돌아보면 뿌듯하기도 하다.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도 않았고 만족스러울 만큼의 완성도도 아니었지만, 결국엔 모두 지나갔고, 조금은 더 단단해진 내가 있다. 이제는 다음 라운드를 준비해야 한다. 몰디브만큼 아름다운 순간들의 비중이 크길 간절히 바라며, 2025년이란 새 챕터 속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기대해 본다.

 

-

2024-12-31